[ 극단 향유와 옥합 ]

 

 

    


- 게시물제목 : 인형극의 역사 1,540 - 조회
- 작성자이름 : 향유와 옥합  2005/05/27 - 등록

[  인형극의 역사  ]

  
  인형극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더불어 시작하였으며, 처음에는 종교의식의 일부로 사용되었다(Currell, 1985).  아마도 병을 고치는 마술사나 샤먼들이 사용한 가면들이 오늘날 인형들의 선조가 되었을 것이다(Baird, 1973). 책, 라디오, TV, 이야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인형극 연기자들에 의해 보고 듣고 기억할 수 있는 내용들이 모든 연령의 관객들에게 공연되어졌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형들은 아동들에게 그들의 주의를 끌 수 있는 불가사의하고 신기한 존재이다(Rivers. 1979).

  인형극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 나라 나름대로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용이나 기원에 대해서 정확하게 기록되어진 것은 거의 없다. 문명의 세계가 시작되면서 인형극은 존재하여 왔지만, 문헌이나 사료가 빈약할 뿐 만 아니라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실물도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이집트에서는 신의 불가사의한 지배력을 믿으며 신상으로서 제단 위에서 인형극이 시작되었으며, 그리이스에서는 기원전 1세기경 부르탈코스 인형극이 전국에 보급되었다.

  인도는 아시아 인형극의 발상지로 종교적인 기원을 갖고 있는데 오래 전에 인형극 인형으로 종교극을 상연하였다는 사실이 이미 고대의 서사시에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인형극은 상업화되어있기 때문에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형극이 민중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인형극은 로마시대의 인형극과  공통된 점이 있다.

  일본에서는 12세기경 신에게 바치는 속죄의 작은 상을 떠돌이 예인들이 움직여 보인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일본인들은 인형은 정말로 살아 있는 것이라고 믿었고 이것을 움직이는 사람을 마술사라고 생각하였다.  

  인형극은 르네상스로 인해 그 황금기를 맞게 되었으며 또  교회에서는 선교사들에 의해 선교용으로 인형극이 공연되었다

  우리나라의 인형극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연희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무형문화재 제 3호인 "꼭두각시놀음" 과 무형문화재 제 79호로 지정된 "발탈" 뿐이며 "만석중 놀이"는 1930년대까지 전해 내려오다 소멸되었다. 20세기에 들어 T.V 방송 영화로 인해 활기를 띄기 시작했으며  많은 발전을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인형이 예술이나 교육적 차원에서 시행된 것이 아니고 신앙의 대상이나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주술로서 사용되었고, 극의 형태를 갖추고 무대에 인형극으로 등장하는 것은 10세기 경 인도에서 공연되었던 극중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 후 12∼13세기 경의 유럽은 인형극의 황금시기라 할만큼 그 활동이 왕성하였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도덕과 관습의 통역자로서 사용되었다. 유럽 특히 그리스와 터키에서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풍자 수단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아동극으로서 인형극의 사용은 비교적 새로운 현상으로 18세기에 들어와서 도입되었다. 학교 교육에서는 20세기에 와서야 그 교육적 가치를 깨닫고 활발하게 활용하였다.

  최근에 와서 인형극은 교육, 언어발달, 상담, 정신건강, 치료, 극, 음악, 오락 및 광고 등에 이르기까지 그 활용에서 더욱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또한 인형극은 다양한 임상 장면과 연구에서도 사용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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